항암일지 41일차
2026년 10월 28일 수요일 남편의 미국 잔류는 허락되지 않았다. 나 수술할 때 남편이 한국에 나와 있는동안 결정된 모양이다. 미국 잔류를 믿고 있었던 남편은 얼마나 허탈할까. 한편 생각해보면 내가 미국에 있으면서 이런 얘기를 들었으면 엄청난 충격에, 더 큰 스트레스였을거다. 몇년 전 멕시코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스트레스가 지금 내 병과 연관있지 않을까 많이 생각해봤다. 이번에 남편에게 귀국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때처럼 걱정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12월에 복귀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큰 애는 검정고시를 치르고 수능을 준비할거고, 둘째와 셋째는 여기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나도 3개월, 6개월에 한번씩 병원에 다니면서 추적 관찰을 해야하는 터였던지라 미국에 갔을 때 약간의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집과 남편의 직장을 구하는 건 누나와 지인들이 도와줄거다. 남편은 능력이 있고, 당장 우리가 굶어죽는 건 아니다. 나는 더 빨리 우리 가족을 만날 수 있기에 좋다. 어쩌면 이번 일은 우리가족이 한국에 모여 살라는 하나님의 큰 뜻일게다. 아쉬운 건 미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지 못하고 나오게 된거다. (하지만 미국 휴스턴 서울 교회에서 간증하겠다는 꿈은 버리지 않았다.) 아직 2달의 시간이 남았다. 우리는 다 잘 해결해나갈거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잘 헤쳐나갈거다. 가족만한 게 없다. 진짜 얼마나 더 좋은 일이 있으려고 이렇게 된 걸까? 건강을 잃었지만 회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가족이 함께 모여서 건강하게 사는 게 얼마나 풍요로운 건지.. 그래서 지금의 이 위기는 우리 가족이 단단해지는 계기가 될 거다. 나중에 웃으면서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우리가 얼마나 단단해졌는지 이야기할 날이 꼭 올거다. (10:50) 동생을 만났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남편이 얼마나 힘들지, 애들은 얼마나 걱정이 될지 생각하니 말이다. 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