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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일지 45일차

 2026년 11월 1일 일요일 애달프고 힘들구나. 어떻게 이렇게 한꺼번에 나쁜 일들이 몰아서 오는걸까? 내가 아픈 것도 서러웠는데 남편마저 해고라니... 물론 우리는 좋은 방법을 찾을거고 끝까지 잘 살아낼거지만 오늘은 좀 울고 싶구나.  십년전쯤 안성으로 막 이사를 갔을 때다. 진짜 집에 돈이 없어서 엄마한테 얼마 빌릴 수 있을까하고 딸을 데리고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엄마도 해줄 돈은 없었다. 나는 차마 조르지는 못하고 터덜터덜 집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너무 비참했고 앞으로 이런 일들을 만들지 말자고 다짐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때 어떻게 그 시간들을 지나왔을까? 빚을 내 빚을 갚았다. 그리고 일을 열심히 하려고 했다. 한달에 한번씩 전단지 돌리고 학원생 한명이라도 끌어모으려고 노력했었다. 3년이 지나고  코로나가 터졌을 때도 학원 문을 몇 달 못 열었어도 나는 그 시간들을 잘 지나왔었고 오히려 풍족하게 살았었다. 그래도 멕시코와 미국에 살면서 빚도 많이 갚았고,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생각했는데 이런 일들이 생겼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 살았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실은 그럴 형편이 아닌데 허세를 부렸던가? 내가 조금이라도 욕심냈던 평안이 이렇게 돌아오는걸까? 나 꽤 열심히 살았는데, 긍정적으로 도전하며 산 것 같은데 다 아니었던가?  몸만 다 나으면 또 예전처럼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솔직히 또 회원 모집하면서 경쟁하며 아등바등 살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매일매일 열심히 블로그 쓰고 사업체를 이만큼 키워 온 동생보면서 부러움을 느낀다. 나도 좀 더 내일에 매진해보는 게 어떨까? 말로만 이렇게 한다한다 하지말고 진짜 글을 써 보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찾아가는 게 어떨까? 지금 넘어진 것은 잠시 숨을 고르라는 거고 나와 남편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또 다시 일어서 달릴 수 있지 않을까? 나 아직 47살이고~ 20년 더 살아야하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빚을...

항암일지 44일차 (10/31)

 2026년 10월 31일  오늘처럼 하루하루를 지내면 좋겠다. 잡념은 덜어내고.. 남편이 미국내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고, 꽤 기대를 하는 모양이다. 어제까지 한국에서 살기로 다잡은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새로 살 지역이 어떤 곳인지 검색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사실 미국에서 좀 더 살고 싶은 내 마음도 반은 있다고 인지했다고나 해야할까. 어찌됐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어디에서든 우리는 잘 살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기... 미혜를 만났다. 멀리서 친구들이 찾아와주니 얼마나 좋은가. 지금 일어난 모든 상황이 기적이라고 잔뜩 위로해주고 갔다. 고마운 친구들.. 조금 헤이해진 마음을 잡자. 요새 기도도 잘 안하고 성경말씀 필사도 안하고 이러면 안되지.. 급할때만 기도하는 건 의리가 없는 짓이지 말이다. 내일부터는 하루 3번은 제대로 기도하기. 자기전에 필사하기 나는 20년 더 살았고, 하나님의 보혈이 나를 깨끗하게 하신다. 암세포는 날마다 줄어들었고, 새로운 세포로 재생됐다. 수술을 잘 끝났고 남은 치료도 거뜬히 받아냈다. 나를 위해 울어주고 기도해 준 사람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고 있는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어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행복하다. 

항암일지 43일차

 어제 오후에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자지도 않았고, 그저 유튜브 쇼츠로 시간을 때우다가 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동생에게 "애들이 오고 내가 할 일이 생기면 나도 다 괜찮아지겠지? 아까운 시간이 없겠지?"라고 물었다. 동생이 "언니, 아무생각없이 쉬는 거 좋지 않아? 맨날 새벽 5시반에 일어나는 거 안하는데? 그냥 좀 쉬어. 30년 일했는데 3개월, 6개월 쉰다고 큰일나? 어?"라고 답했다. 나는 또 울컥했다. 이게 나와 동생의 차이인가보다. 소심과 대범의 문제인가 생각해봤다. 속으로 끙끙 앓고 혼자 문제를 다 해결해야 하는 나, 불편해도 감수했던 나, 하루종일 종종종 무엇을 해야만 속이 편했던 나와 달리 동생은 혼자 노는 것도, 쉬는 것도 잘 했다. 불편한 부분은 꼭 상대방에게 알리고 자신의 기분과 상태가 어떤지를 알게 했다. 속으로 꽁한게 없고 할 말은 하는 성격... 그게 암이 걸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인가 (07:26)  오른쪽 배와 어깨가 찌릿하며 아프다. 4시간짜리 진통제를 먹었다. 곧 나아지기를 바란다. 오늘은 미국에 있는 친구들과 남편이랑 통화하느라 3시부터 깨어 있었다. 지금 다시 자야하는데 잘 수 있을까?? (07:28) 동생 말이 맞다. 너무 급하게 아이들과 남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지 말자. 해준이는 덕성초에서, 혜윤이는 중앙중에서 졸업시키고 가온고를 알아보면 된다. 우리가 배곧으로 이사오면 2월에 서류 넣고 전학시키면 된다. 남편은 고용보험 타 먹으면서 집 구하고, 직장구하면 된다. 나 병원 가는 거도 도와줄 수 있고, 조금이라도 쉬었으면 좋겠다. 동생은 한국으로 나오는데 오히려 걱정이 안 된다고 했다. 나도 그런 마음이었잖아. 천천히 하나씩 해결해나가면 다 잘될거다. 내년 3월쯤엔 우리는 왠지 배곧 이지더원으로 이사했을거고, 나는 항암까지 다 마치고 회복을 할 거고 일을 할 준비를 하고 있을거다. 아이들은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을거고, 율이도 공부를 시...

항암일지 42일차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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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29일 목요일 새벽녘 남편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그래~ 사람들은 일부러도 이직하려고 하는데 어차피 불안한 회사 빨리 탈출하는거지.. 그동안은 수동적으로 잡을 얻고 회사에 선택된거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회사를 찾는거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어디든 우리는 갈 수 있고 잘 해 나갈 수 있다. 남편은 위기 관리나 대처 능력이 나보다 뛰어나고 마인드가 다르다. 그런 남편이라면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수술로 암은 완전히 제거되서 지금은 남아있지 않고 림프절 전이도 의심될 뿐 전이 아니어서 아주 좋은 상황이고 수술 회복도 굉장히 좋은 상황이야. 당신 빨리 회복만하고 항암치료 잘 받으면 마무리되는 상황이지" 남편에게 아침마다 이런 긍정의 말들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어제 남겨준 말이 고마웠다. 지금은 뭔가 복잡하고 정리가 안 되었고 억울한 느낌이지만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잘 정리해 나갈거다. 이 위기를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오늘도 즐겁게 지내보자. (06:00) 남편이 자기 전에 문자를 남겨주었다. 매일 세뇌되면 불안이 덜하겠지? 고마운 남편 솔직히 말하면, 나는 미국에서 살고 싶은가보다. 미국에서 예전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 거기서 먹었던 음식, 장보러 가던 일, 혜윤이 학교에 쫓아다니던 것 모두 그립다. 그리고 사실은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두렵다. 아이들 입시, 경쟁에서 벗어났었는데 여기오면 또 욕심이 날 것 같고, 돈을 벌기 위해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는데 예전처럼 열심히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하다. 남편한테는 큰소리쳤지만 말이다. 사람이 간사한 게 미국에 있을 때는 한국에서 열심히 생활하는 다른 선생님들을 그렇게 부러워 했으면서 막상 한국에 돌아와 그럴 여건이 됐는데 걱정부터 드는 게 어이가 없다. 사실 동생은 언니가 다시 간다고 해서 말은 안 했지만, 가는 게 싫었단다. 치료와 검진을 계속 해야하는 것도 그렇고 한국에서 안정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1~2년 미국에서 더 살아서 뭐하냐고~~ 남편이...

항암일지 41일차

 2026년 10월 28일 수요일 남편의 미국 잔류는 허락되지 않았다. 나 수술할 때 남편이 한국에 나와 있는동안 결정된 모양이다. 미국 잔류를 믿고 있었던 남편은 얼마나 허탈할까. 한편 생각해보면 내가 미국에 있으면서 이런 얘기를 들었으면 엄청난 충격에, 더 큰 스트레스였을거다. 몇년 전 멕시코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스트레스가 지금 내 병과 연관있지 않을까 많이 생각해봤다. 이번에 남편에게 귀국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때처럼 걱정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12월에 복귀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큰 애는 검정고시를 치르고 수능을 준비할거고, 둘째와 셋째는 여기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나도 3개월, 6개월에 한번씩 병원에 다니면서 추적 관찰을 해야하는 터였던지라 미국에 갔을 때 약간의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집과 남편의 직장을 구하는 건 누나와 지인들이 도와줄거다. 남편은 능력이 있고, 당장 우리가 굶어죽는 건 아니다. 나는 더 빨리 우리 가족을 만날 수 있기에 좋다. 어쩌면 이번 일은 우리가족이 한국에 모여 살라는 하나님의 큰 뜻일게다. 아쉬운 건 미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지 못하고 나오게 된거다. (하지만 미국 휴스턴 서울 교회에서 간증하겠다는 꿈은 버리지 않았다.) 아직 2달의 시간이 남았다. 우리는 다 잘 해결해나갈거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잘 헤쳐나갈거다. 가족만한 게 없다.   진짜 얼마나 더 좋은 일이 있으려고 이렇게 된 걸까? 건강을 잃었지만 회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가족이 함께 모여서 건강하게 사는 게 얼마나 풍요로운 건지.. 그래서 지금의 이 위기는 우리 가족이 단단해지는 계기가 될 거다. 나중에 웃으면서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우리가 얼마나 단단해졌는지 이야기할 날이 꼭 올거다. (10:50) 동생을 만났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남편이 얼마나 힘들지, 애들은 얼마나 걱정이 될지 생각하니 말이다. 어제...

항암일지 40일차

 2026년 10월 27일 화요일  한국에 온 지 두달이 되었다. 아이들이 그동안 잘 버텨준 거 너무 감사하다. 내년 2월이나 3월에 돌아가는 걸 목표로 열심히 치료할거다. 지금까지 일어난 과정들은 모두 기적이다. 수술은 잘 되었고, 내 몸에 암 덩어리는 없으며 향후 치료는 완치를 위한 방법 중 하나다. 항암을 받는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잘 견뎌낼 것이다.  엄마를 위해 기도한다. 엄마는 당뇨와 고혈압이 있는데 음식을 잘 드시지 못한다. 그래서 몸에 힘이 없다. 걷는 게 불편해서 어디 데려가고 싶어도 힘들다. 게다가 내가 아픈 걸 안 뒤부터 엄마는 나만 보면 우는데, 그런 엄마를 보면 또 나도 운다. 엄마의 인지가 떨어지는 걸 보면 속상하고 화가 난다. 엄마에게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있다. 엄마가 식사를 조금이라도 잘 하셔서 같이 운동다녔으면 좋겠다. 남편을 위해 기도한다. 오늘 회사에 가 보면 앞으로 우리가 어디에 거주해야 하는지 알게 될거다. 부디 남편이 원하는대로 휴스턴 잔류로 결정되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나의 기도제목에 2~3월에 휴스턴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한 것은 남편의 바람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다소 어려운 결정이 생기겠지만 난 꼭 돌아가고 싶다. 남편이 휴스턴에 잔류할 수 있다는 좋은 소식을 꼭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06:38) 밍구가 왔다 갔다. 내 얘기 다 들어주고 밥 같이 먹고... "컨디션이 좋아보여 안심하고 간다. 혈색도 좋고" "조만간 애들이랑 다같이 만나서 뮤지컬도보고 맛난것도 먹고 일상을 함께 하자"는 말에 가슴이 먹먹하다. 일상을 함께 하자니.. 지금 내가 제일 하고 싶은건데... 다른 사람들처럼 예쁘게 꾸미고 카페에서 왁자지껄 웃는 거.. 그거 지금 내가 제일 하고 싶은거다. 나는 지금 그 길에 한발짝 더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다 잘 될거다.  왼쪽 두번째 발가락에 멍이 들었었다. 암 선고 초기에 크록스 신고 하도 많이 걸었을 때 생겼다. 발톱 스케일링을 하러 왔는데,...

항암일지 3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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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26일 월요일  엄마가 tv를 틀어놓고 잠을 자곤 했는데, 어젯밤에는 내가 그랬다. 왁자지껄한 사운드로 공간이 채워지니 덜 외로웠다. 남편이 아이들 머리 깎이고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주말 우리 루틴 중 하나였다. 나도 얼른 돌아가서 그 루틴에 동참하고 싶다. 가족이라는 게 별 거 하지 않아도 그냥 옆에만 있어도 좋은 것이라는 걸 알겠다. 루게릭병을 알았던 호킹은 매일 아침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생각하고 무엇을 하지 생각하는데 2시간을 썼다고 했다. 그는 꽤 오래 살았는데 그런 생각하는 습관이 비결이었을 거라고 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벽에 다른 이들의 글만 보지 말고 나를 위해 생각을 해야겠다. 오늘은 오전에 정해진 진료를 받고, 책을 읽으며 침대에 누워 쉴거다. 동생이 오면 함께 점심을 먹고, 2시에 보험회사 사람을 만나 나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동생과 밖에서 조금 놀다가 5시쯤 돌아올 예정이다. TV를 좀 보다가 성경을 필사하고 아이들과 전화통화를 하고 학교에 보낼거다. 남편이 있어 든든한 마음이다. 자기전에 하나님께 기도한다. 참 식사때 기도를 잊지 말자. 좋은 생각만 하는 것도 잊지 말자. (06:22) 밍기적거리다 머리를 감았다. 머리를 감으며 생각했다. 만약 오늘이 마지막 날이면 나는 무엇을 할까? 나는 아이들과 평범한 하루를 지내고 싶다. 각자 방에서 놀다가, 공부하라고 잔소리도 했다가 저녁에 되면 TV보면서 같이 밥 먹고, 설겆이 하고 정리를 좀 해 놓고, 잘 자라고 뽀뽀하고... 맞다. 나는 내 가족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 그러려면 더 열심히 재활하고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맘 속으로 외치자. 나는 끝까지 잘 치료받고 내 아이들 곁으로 돌아간다고...  (12:14) 12시쯤에 동생이 와 주었고, 같이 점심을 먹고 쉬었다. 2시에 보험사와 약속이 있어 나갔었다. 어차피 처리해주지도 않을거면서 왜 보험을 부활시키는 제도가 있는지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너무 화가 났다. 한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