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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일지 1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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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0 기상 / 3시쯤 한번 깼지만 다시 잘 잔 것 같다. 소금물 한 잔 / 필사 07:10 운동 09:00 미역국, 잡곡밥, 김, 삶은 계란, 뉴케어 13:00 삶은 감자, 뉴케어, 전복죽  16:00 몽땅주스  19:30 잡곡밥, 소고기구이, 황태채, 마늘장아찌 오늘 아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 큰 아이는 덤덤한 듯 했지만 심정은 꽤 복잡했을 것이다. 둘째는 엄청 울었다고 한다. 다음날 학교를 못 가겠다 할 정도로.. 막내도 우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전화 통화를 했고, 곧 달랠 수 있었다. 수술을 하게 된 것은 너무 잘 된 일이다. 엄마는 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니 이번 치료도 그렇게 엄마의 모습대로 해 나갈거다. 너희들은 지금처럼 학교 생활 열심히 하고,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반드시 꼭 나아서 너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거고, 건강한 모습으로 또 여행다니자고 했다.  수술에 앞서 걱정과 두려움이 있지만 이 또한 담대히 맞닥뜨릴 것이다. 여전히 나는 건강한 음식을 먹고 산책을 하고 푹 쉬면서 암이 다시 자랄 수 없는, 면역력 좋은 몸으로 만들거다. 20년 더 살거다. 앞으로 잘 될 일들만 생각하자. 나는 잘 해 낼 수 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거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나아진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그들을 질투하지 말고 부자 곁에 머무르라고 했다. 부자의 기운을 느끼라는 것이다. 2040 폐암환자 단톡방에 부고 소식이 있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지난해부터 치료를 했던 모양이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카톡이 계속 오는데 맘이 좋지 않다. 그 방을 나와야 하나 고민했다. 나는 사람들이 웃고 노는 모습이 질투가 나 인스타 팔로우도 취소하고 다녔는데, 그러면 안될 것 같다. 오히려 건강한 사람들의 즐거운 소식들을 보며 그들 곁에 있어야 할 것 같다. 건강한 기운이 내게 오게 말이다. 과연 그런 게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병원을 생각했다. 아픈 사람들이 모이...

항암일지 12일차

05:00 기상 08:00 몽땅주스, 콩물 08:00 운동 11:00 파스타, 버터스테이크 14:45/ 16:00 아산병원 19:30 갈비  오늘 간MRI 결과와 함께 수술여부를 알 수 있는 날이었다. 아침 운동을 나갔지만, 맘이 편치 않았고 너무 떨리고 떨렸다.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역전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동생이 일부러 동네에 와서 점심을 사주었다. 나를 위한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맙다. 이번 일을 계기로 동생과 더더 친해진 것 같다. 동생이 항암치료를 하게 되더라도 아들과 나들이 하는 기분으로 병원에 다니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병원 가는 게 고역이면 안 되니까 나를 낫게 하는 곳에 즐겁게 갈 생각을 했다. 더불어 아들과 함께 더 즐거운 마음으로 다니자고도 다짐했다. 민영쌤이 전화하셨다. 날 위해 남편분과 기도하신다고 했다. 또 감사한 일이다.  드디어 진료, 간에 있는 병변은 혈색종인지 혈관종인지 전이는 아니라고 했다. 의사쌤이 수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너무너무 너무 기뻤다. 의사쌤은 병변의 위치와 전절제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위험성에 대해, 추후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해주셨다. 2년반 여명 진단도 받았는데 살 수만 있다면 몇 달의 아픔은 내가 다 감당할 수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세히 생각해보니 아주대에서 바닥을 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고, 아산병원을 가게 된 것, 좋은 의사를 만난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생각했다. 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해 준 것 또한 그렇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고, 밤낮으로 기도하고, 찬양하고, 성경을 공부한다. 그동안 타인에게 눈돌리지 못한 마음을 회개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 준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힘든 일을 겪었지만 나를 성장하게 하긴 하나님의 은혜를 몸소 깨달았다. 앞으로의 일들도 두려워하기보다는 담대하게 맞서 싸울 것이다. 행복한 청사진을 그리며 완전 관해를 꿈꾸며 온 맘과 정성을 다할...

항암일지 1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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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0 기상  07:30 콩물, 몽땅주스  07:50 운동  12:00 히비스커스 베리차 15:00 생선구이 정식 18:00 잡곡밥, 소고기 18:10~ 저녁운동  20:00 계란 2개, 뉴케어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 4~5시까지 내리 쭉 자서 기분이 좋았다. 하나님께 잠을 쭉 잘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빌었다. 아침을 먹고 나가 산책을 1시간 반이나 했다. 이 동네의 그 산책길이 나를 살린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나아지고 있다. 다 잘 될거다. 하나님은 역전의 기회를 주실거다. 내 소식을 듣고 나를 위해 울어 준 사람이 많아 감사했다. 나를 응원하고 다 잘 될거라고 했다. 내 주변 사람들 중 내가 잘못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믿음들이 나를 또 살린다. 이렇게 많은 사랑과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이리라. 반면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이만큼 울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회개했다. 사는게 바빠서, 먹고 살기 급급해서 놓치고 산 것들이 너무 많다. 우선 건강을 잃었으며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도 가지지 못했다. 요즘 내가 바꾸어야 할 습관들을 생각해봤다. 나는 몸은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 있지만 마음은 늘 불안했던 것 같다. 이거 해야하는데, 저거 해야하는데...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은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한 나를 자책하기 일쑤였다. 하고 싶은 것들을 이만큼 끌어안고 있지만 정작 행동하지 않아 나에게 또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자연치유 요법 중에 완벽한 쉼이 있는데, 나에게는 그런 쉼이 없었던 것이다. 제대로 쉬는 걸 해 봐야겠다. 내일 간MRI 검사 결과를 듣고,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수술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또 많이 기도했다. 그런데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너의 끝은 어차피 낫는 걸로 정해져 있어. 그런데 그 길로 가는데 직진(수술)해서 가느냐, 다른길로 돌아가느냐의 차이야"  너무나 감사한 말이었다. 폐 한쪽을 떼어 낸다는 ...

항암일지 10일차

04:00 일어났다. 잠을 다시 못 잤다. 09:00 소고기 구이, 콩밥, 김치  12:30 계란 2개, 사과, 뉴케어 16:30 상황버섯 한방 삼계탕 고등학교 친구들이 나를 봐 주러 왔다. 내가 숲이 보고 싶다고 해서 찾아간 카페에서 생강차를 마시며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서로 각자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우리 정말 서로 너무 힘들었구나.. 나만 힘든게 아니라 우리 모두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그러면서 어떻게 위기를 헤쳐나갔는지 이야기를 해 보니... 결론은 지금 무엇을 못한다고 끝난 게 아니다.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다 . 때론 비껴갔단 그 방법이 더 좋은 결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슬퍼하지 말라. 이 또한 지나간다.  나쁜 생각이 들면 차라리 욕을 하고 빨리 순간을 지나가게 하자. 장항준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줬다. 자신에게 나쁜 말을 한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는 방법에 대해 '씨*놈'하면서 욕을 하고 머리를 전환시킨다고 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아주대 의사의 말이 떠오를 때마다 개** 한마디 욕을 해 줄거다.  나는 미래에 있을 좋은 일만 생각할거다. 미국에 돌아가서 늘 운동하던 그 호수가를 걸었다. 아이들과 부산 여행 가서 맛있는 밥을 사 먹었다.  남편과 손잡고 숲길을 거닐었다.  군대에서 휴가나온 아들을 안아줬다. 휴스턴 서울 교회에 가서 하나님 만나고 살아낸 이야기를 간증했다.  5년뒤 암세포가 사라진 나의 모습은 또 얼마나 화사하고 예뻤는지...  암세포는 날마다 줄어들고, 새로운 세포로 재생했다. 작지만 강한 세포가 울퉁불퉁 못난 암세포를 아그작 씹어먹었다.  그냥 좋은 상상만 하자.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항암일지 9일차

 '담대히 나아가라'는 말이 나를 살릴 것이다. 의심하지 말자. 나는 용기를 잃지 않았으며, 담대했으며,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푹 쉬고, 운동하고, 잘 먹으며 내 체력를 보충하리라. 유튜브와 각종 매체를 정리한다. 난 해 낼 수 있다. 남편이 잔류하고 싶다고 회사에 얘기했다. 잘 해결되면 걱정이 조금 준다. 나는 곧 데리고 올 막내를 잘 케어할 수 있으며 우리 가정의 일들도 조금씩 잘 풀릴 것이다.  06:30 기상 어제보다는 좀 많이 잤다. 담대히 나아가라.. 또 맘 속에 새긴다. 남편과 통화를 했다. "어제 막 울었던 건 수술을 못하는 것보다 항암약이 잘 듣지 않는다는 말이 두려웠노라" 말했다. 나는 내 암세포를 줄여보고 싶은데 나의 희귀암이 내 암세포가 그렇다고 하니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막막했던 것 같다. "기적처럼 만난 담대하게 나아가라는 말이 나를 살릴 것 같다"고 말했다. 나에게도 맞는 약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평생 이렇게 산다해도 살아만 있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리라. 어제부터 계속 CCM을 듣고, 기도를 하고,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07:30 몽땅주스, 계란 2개, 뉴케어 08:00 CCM 들으며 산책 -담대하라 2040 폐암 환우와 점액성 선암 채팅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채팅방에 과하게 빠지지 않고, 상처받지 않도록 절망하지 않도록 잘 조절할거다.   11:30 긍정모임 언니들 만남 /감바스, 스테이크 큰 아이가 초등학교때 안성으로 이사를 갔었는데, 그때 아이 친구들 엄마로 만났다. 10년 이상 만났던 이 언니들이 매일 전화해 주고, 용기 주고, 나를 지켜줬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그들이 집에 가서 너는 잘 할 수 있을거라고, 만나고 나니 더 그런 맘이 들었다고 해 줘서 더욱 힘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힘내자. 담대해지자. 18:00 둘째 동생네와 저녁식사 /보리밥 일부러 와서 밥사주고 간 둘째동생과 제부, 밥 잘 먹으라고 챙겨줘서 고맙다. 더 살...

항암일지 8일차

 어째 하루걸러 하루 널 뛰는 이 마음을 어찌 잡을까.. 어제는 그토록 좋았는데,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맘이 또 헛헛하다. 안 울고 싶었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미어진다. 나는 생각보다 내가 가진 병의 특징을 잘 알고 있구나. 내 암은 침윤성 선암이다. 속도가 매우 느리지만 암은 암이다. 내 폐속에 있는 커다란 종괴 모두가 암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산병원 의사들도 특이한 케이스라고 했다. KRAS G12D라는 변이 유전자 하나가 발견되었다. 특히 침윤성 점액성 폐선암(IMA)에서는 KRAS 변이가 흔하다고 한다. 반대로 EGFR 변이는 일반적인 폐선암보다 드문 편이다. 그래서 점액성 선암 + EGFR 음성 + KRAS G12D 양성이라는 조합은 서로 상당히 잘 들어맞는다. 아직 이 변이에 대해서는 표적치료제가 나오지 않았지만 현제 임상 실험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내 암은 천천히 진행되는 특질상 항암약이 잘 안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아주대 종양내과에서 이미 항암만 할 수밖에 없다. Kras g12d 변이가 있긴하지만 유의미하진 않다. 임상도 돈 될 사람한테 한다. 침윤성 폐암의 경우 항암도 잘 듣지 않을거다. 유지만 되도 다행이다라고 얘기했다. 아산병원에서는 좀 더 공격적으로 치료해보자고 말했다. 아주대 pet-ct상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간의 병변이 전이성인지 확인해보자. 전이가 아니라면 전절제를 고려하고 있다. 차선책으로는 방사선을 고려하고 있지만 이미 기관지 내에도 퍼져있다고 판단해 치료 효과가 그다지 좋지 않을수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MRI로 간 병변을 확인하고, 전절제를 해보자고 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고 놀라고 슬펐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아주대에서 뇌의 작은 병변을 이유(추적)로 4기라 진단했고, MGS확인 후 항암 치료를 하기로 했었다. 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못한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지금의 몸상태를 식이와 운동으로 암이 싫어하는 환경을 만들고 항암 치료를 잘 받을 수 ...

항암일지 7일차

9월 14일, 처음 암 진단을 받았다. 황망했다. 9월 17일 목요일, 아주대에서 다학제 진료를 받은지 일주일이 지났다. 수술 안 되고, 방사선 안 되고, 뇌에 있는 좁쌀 크기 병변을 전이로 보고 4기 진단을 받았다. 항암밖에 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3일동안 울고 울고 울었다. 엄마, 시누이, 남편, 동생들 모두 엄청 울었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  9월 23일 수요일, 아산병원 다학제에서는 간에 있는 병변이 암이 아니라면 수술과 방사선을 해 보겠다고 했다. 간에 있는 그 병변이 암이라면 다시 4시가 되고 항암밖에 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약 열흘동안 일어났다. 어떤 날은 의지로 불태우다가 어떤 날은 의사 한 마디에 좌절하고, 어떤 날은 하루종일 울고, 어떤 날은 또 너무 기뻐 입맛이 살아나곤 했다. 어젯밤 12시에 취침했고, 비록 새벽 2시에 한번 깨긴 했지만, 5시까지 잘 수 있었다. 눈 떴을 때 헛헛함과 두려움과 걱정이 또 동시에 밀려왔지만 나 아프지 않게 눈 떴고, 배고픔을 느끼고 있음에 감사해야 함을 안다. 오늘도 힘차게 하루를 시작할 용기를 주시고, 긍정의 힘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시고, 웃으며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여유를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해본다. 긍정확언 1. 나는 10년 더 산다. 2. 하나님의 보혈이 나를 깨끗이 하신다. 3. 암세포는 날마다 줄어든다. 4. 새로운 세포로 재생된다. 5. 항암 주사를 거뜬히 맞는다. 6. 항상 행복하고 감사하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미리 살지 않는다.  오늘 내 몸을 잘 먹이고 움직이며 치료받을 힘을 만든다. 검사 결과가 좋으면 그 길로 가고, 좋지 않으면 의료진과 다음 길을 찾는다. 무서워지는 날이 와도 괜찮다. 다시 다음 치료 하나만 생각한다. 그리고 치료하는 동안에도 내 삶과 아이들과의 시간은 계속된다. 06:20~07:55 산책  남편과 통화하고 또 마음을 다 잡았다. 즐겁게 현재를 살자. 나의 시간은 계속 된다.  09:00 몽땅주스, 계란...

항암일지 5일차

항암일지 3000일차를 기대해본다.  내 몸에는 암세포가 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꽤 오래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여태 행복하게 잘 지냈다. 운동하고 식이조절하고 마음을 굳게 먹으면 그전처럼은 아니어도 앞으로 3000일은 더 살 수 있다. 아니 5000일도 살 거다. 걱정마라.. 다 지나간다... 5:30 기상 아주대에 들러 염색체를 찾아다가 아산병원에 가야한다. 이또한 잘 해결되리라 믿는다. 8:10 아주대에서 염색 슬라이드 수령.. 택시안 일이 잘 해결되었다. 빨리 아산병원으로 갈 수 있게 됐다. 아마 결과가 크게 바뀌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잘 받아들이고 해결해 갈 수 있다. 아이들 학교나 집 문제 등 해결해나갈 게 산더미다.. 하나하나 헤쳐나가면서 아이들을 지키자. 난 특별한 사람이고 강한 사람이다. 나를 걱정해주고 지켜주려는 사람이 많다. 얼른 맘을 정리하고 추스르자.  10:30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진료 "모든 암은 완치를 목표로 합니다"  "잠시 내용을 좀 보고 말씀드릴게요"  "뇌에 있는 건 전이가 아닐거 같아요. 신경쓰지 마세요"  이게 맞나? 갑자기 병기가 내려가는.. "방사선과 항암을 해 보죠. 점액성 선암은 항암이 잘 안든다는 특징이 있어요. Kras변이가 있는데 선암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거에요. 점점 표적항암제가 나오고 있어요." "선생님 그런데 아주대에서는 방사선도 어렵고, 항암만 할 수 있는데 2년 반 예상하던데요"  "누가 그래요? 크기가 커서 방사선이 쉽지는 않을 거에요. 내일 다학제 진료에서 확인해보시죠"  어제와 사뭇 다른 진단에 놀랐다. 물론 내일 다학제에 가서 오늘과 다른 진단이 나올수도 있지만 교수님의 마인드에 너무 기쁜 소식이다. 나 나을 수 있겠다.. 오랫만에 기쁜 마음으로 동생들과 밥을 먹으러 갔다. 좋은 소식이라 생각했지만 한편 너무 낙관적인 태도가 맘에 걸리기도 했다. 석촌호수가...

항암일지 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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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00 기상  마음을 다스리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해본다. 지금 닥친 위기를 잘 벗어날 수 있도록 제발 도와주소서. 06:00 해준이가 집에 오는 것을 보고 싶어 전화를 했는데 목녀님이 집에 와 계셨다. 내 얼굴을 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목녀님과 통화하면서 엄청 울었다. 함께 울어주셔서, 목놓아 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했다. 09:30 아산 병원에서 다학제 진료가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계속 부르지 않아 뭔가 심각한 얘기들이 오간다는 걸 알았다. 드디어 불러 들어갔더니 어제 본 의사쌤의 얼굴이 그다지 밝지 않다고 느껴졌다. "공격적으로 진료해 볼 생각이에요. 첫번째로 전절제를 할 거에요. 그리고 여의치않으면 방사선도 시도해 볼 겁니다. 다만 간에 있다는 그 병변이 전이인지 먼저 확인할거에요. 아주대 PET-CT에서는 아무것도 안 나왔지만 소견상 전이 의심이 있어서 MRI로 확인해 봅시다." 종양내과  "수술 위험이 적지 않아요. 당연히 숨 쉬는데 어렵고요, 한쪽에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자세도 기울어져요. 기관지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지만 암세포를 잘라내는데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폐식도흉부외과 "이미 기관지나 식도 옆으로 종괴가 붙어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방사선 효과가 어디까지 일지 모르겠으나 일단 해볼거에요" 방사선과 완치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주려고 노력해주시는 모습에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가도, 간에 생긴 그 병변이 전이이면 어떡쩌지 또다른 걱정이 생겼다. 또 흔들리는 나에게 동생이 말했다.  "언니 내가 찾아봤는데 아주대 의견이 틀리지 않은 거 같아. 너무 흔들리지 말고, 원래대로 항암하면서 아이들과 좋은 시간 가지는 데 집중하자"  14:00 마음이 답답하여, 그럴 때마다 가는 산책로에 올라갔다. 살살 걷다가 의자에 누워 하늘을 찍고 있었다. 언니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에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설사 전이가 ...

지금 우리집은 절망적인 상황이다.

  어제 그래도 조금 일찍 잠들었으니 실컷 글이나 쏟아내려고 한다.   집에 갑자기 나쁜 일이 동시에 터졌다. 나의 암 발견, 남편의 실직이다.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오기에 아직 3달 정도의 여유가 있기도 하고, 어쩌면 내년까지 좀 더 돈을 벌기 위해 미국 잔류를 선택할 수도 있다. 아이들은 12월에 데리고 와야할 것이다. 주재원으로 산다는 건 이런거다. 갑자기 집으로 보내졌을 때 황망함이란.. 사실 2년 전에도 멕시코에서 남편이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되었을 때가 있다. 그때도 12월까지 일하는 것이었는데 얼마나 피마르고 걱정이 많아지는지 미국 회사에서 받아주기를 목빠지게 기다릴 때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 그래도 그때는 내가 아프지는 않았다. 한국에 집이 없다. 문제는 돈도 없다. 아이들과 흩어져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내가 아프다는 것이다.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올 때 수입이 줄어들게 되는 것을 힘들어 한다. 내가 아프지 않으면 나가서 일하면 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 되었다. 엄마가 아픔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좌절감을 줄 것인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당연히 우리 가족에게 생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긴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거라 믿는다.  가족이 함께 모여 살며 서로의 안녕을 기도하고, 닥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긴다. 나는 2년 여의 치료를 걸쳐 반드시 나아질거다. 꼭 된다.  당장 생각할 것은 12월에 아이들이 오면 함께 살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시누이가 아버님을 모셔가주면 제일 베스트인데 그걸 안하려고 한다. 그럼 내년 8월까지는 거처가 생기는데 말이다. 힘들지.. 어려운 일이지..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보자. 분명 길이 열릴 것이다. 우린 분명히 잘 해 나갈 수 있다. 크게 절망한 남편의 건강에 문제가 없기만을 바라본다....

항암일지 4일자

 26.09.21 05:09 거의 기상.. 4시간밖에 못 잤긴 했지만.. 오늘은 아주대 진료가 있다. 진료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들을 할 것이다. 과연 나에게 변이유전자가 알게되는 날이다.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다른 이들의 기도의 힘으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본다.  10:00 30분 걷기 언니들이랑 연락.. 희망을 가지고 병원에 간다. 진료 후 유전자 변이 없었고, 다학제 진료와 상황은 같다. 2년이든 3년이든 유지 목적의 항암을 할 수 있다. 나는 5년 동안 할 거고 애들과 함께 끝까지 살아낼거다. 괜찮다. 담담히 받아들이자. 온 우주의 힘을 모아 난 나을거다.. 괜찮다. 아이들을 위해 힘낼거다... 아이들을 위해..... 꼭~~~~

항암일지 3일차

26.9.20 아직 항암은 시작도 안했는데... 남편이 퇴사할 것 같다. 한마디로 그냥 짤리는거다.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괜찮았다. 애들이 보고 싶었고 언제까지 따로 살 것인가?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조금 돈도 있을거다. 남편이 이직 준비 잘해서 잘 들어오면 되고, 뭐든 굶어죽겠냐? 내가 문제지.. 나는 괜찮아질거다. 오늘도 내 암세포는 줄어 들고 있고 새로운 세포로 재생된다. 어차피 나는 살아날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 우리 가정에 닥친 상황을 잘 헤쳐나갈거다.  남들은 다 남편이 회사를 정리하고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단다. 생활이 걸린 일이니 말은 못했을 뿐.. 아버님도 제부들도 말이다. 우리만 못 보고 있었던거다.  동생도 잘 된 일이라고 말했고, 시누이는 이 상황이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도리어 좋아했다. 뭔가 시기적으로 잘 맞아 떨어지니 다행인 것 같다고 했다. 긴 항암을 시작하니 남편이 오는 게 맞다는 의견이다. 나의 미국 생활은 이제 막을 내리겠지만 나는 한국에서, 여기 안산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될거다. 아이들과 남편과 옹기종기 모여 밥 먹을 일상을 그려본다. 우린 잘 헤쳐나갈거다.  윤정이와 은경이에게 상황을 얘기했다. 함께 울어줘서 고맙다. 3일간 온갖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데 이제 굳건해지기로 했다. 긍정적으로 상황을 헤쳐나가자. 난 잘 해낼 수 있다. 06:50~7:30 운동 / 미영과 전화통화.. 몽땅주스 2번 먹음 - 암세포야 사라져라.. 정상세포로 재생 됐음.. 17:00 저녁 -채식 위주로 골고루 먹었다 / 암세포 0.1% 사라졌다. 18:30 산책  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은데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남편의 소식을 들었더라면 더 막막하고 엄청 걱정하며 정리하지 못해 힘들었을거다. 마치 멕시코에서처럼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내가 남아있어야 하는 상황이고 아이들을 곧 만날 수 있으니, 집만 해결되면 (...

항암일지 2일차

몸무게 56.8kg - 지난 이틀동안 많이 먹지 못하고 너무 많이 움직였던지 살이 빠졌다. 아님 이제 시작인건가? 05:00 기상 - 보통 3, 4시에 한번씩 깼는데, 오늘은 5시간 쭉 잤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08:00 -몽땅주스  08:30 40분 걷기 / 선언문을 입으로 되뇌이며 걸었고, 몇 년 뒤 서울 교회에서 간증을 하고 있을 상상을 했다. 한바퀴 돌고 의자에 누워 쉬고 있을 때였다. 시누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님 얘기부터 많은 얘기를 했는데 둘이 엄청 울었다. 동생들이나 엄마 앞에서는 덤덤한 척 했었는데, 시누이랑은 원없이 울었다. 눈물을 참는 것도 또다른 스트레스인 것 같아서 그냥 울거다. 11:40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 목소리는 눈물 버튼이다. 일하는 것도 힘들텐데 아이들과 집안일까지 케어해야하니 미안할 따름이다. "무서워?" 라고 물었는데 무서운 것보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진짜 강해지자고 말했다. 난 강해질거다. 1년뒤에 나아서 돌아갈거다. 왠지 그렇게 될 것 같다. 남편에게 우리는 서로 전화는 하지 말자고 말했다. 문자로만 연락하는 게 좋겠다.  13:00 엄마랑 다이소에 걸어갔다 왔다.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토길을 발견했다. 중입자치료에 대해 알게 되어 엄마에게 말했다. 1000만원 보태줄테니까 무조건 알아보라고 한다. "살아야지, 너는 살아야지" 폐암 4기, 최소 전이, 변이 유전자 가진 사람에게 중입자 치료를 할 수 있게 한다는 뉴스를 봤다. 내가 그 대상이 되면 좋겠다.  맨발 걷기 할 수 있는 곳도 알았다. 생각보다 이 동네 좋다.. 16:00 계란 1개, 키위, 뉴케어, 녹차  18:00 추어탕 1/2  18:30~19:00 오늘도 건강선포문을 소리내어 말하며 운동을 했다.  1. 나는 10년 더 산다 2. 하나님의 보혈이 나를 깨끗하게 하신다 3. 암세포는 날마다 줄어든다 4. 새로운 세포로 재생된다 5. 항암주사를 거뜬히 맞는다 6...

항암일지 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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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고, 잘 살아내기 위해 일상을 기록하기로 했다. 6:50~7:40 걷기 눈을 뜨자마자 그냥 신발을 신었다. 하루 3번 정도 1시간씩 나가 걸을 예정이다.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좋다. 큰 아이에게 전화를 한다. "또 누워 있었어?" "오늘 저녁에는 뭐 먹어?" 아이 얼굴을 보니 눈물이 왈칵 나서 얼른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냥 아이들이 보고 싶다.... 빨리 아이들을 보러 가야겠다. 10:10 계란 2개+김 /뉴케어 150ml 10:40~11:10 30분 산책 내일부터 몽땅주스를 해 먹으려고 오늘 마트에 장을 보러 다녀왔다. 문득 아이들과 장 보던 생각이 났다. 미국에 돌아가 다시 H마트에서 장보는 일상을 꿈꾼다. 그러면서 왜 그렇게 집에만 있으려고 했는지 반성했다.  16:40 고구마 1개 / 녹차 17:40 오리 닭다리 + 밥 18:20~19:10 걷기 -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서 수다를 떨고 싶었는데 막상 전화할 사람이 없었다. 친한 친구와 언니에게 전화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거 같다.  <긍정적인 생각, 나의 확언>  1. 나는 10년 더 산다. 2. 하나님의 보혈이 날 깨끗하게 하신다. 3. 암세포가 날마다 줄어든다. 4. 새로운 세포로 재생된다. 5. 항암주사를 거뜬히 맞는다. 6. 나는 행복하고 감사하다. 만약 내가 7월에 건강검진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직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기에 바쁘게 잘 살고 있지 않았을까?아무것도 모른채 말이다. 갑작스럽게 이렇게 커진 병기는 그동안 내가 내 몸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술을 마실일이 있으면 엄청난 폭주를 했고 거의 기억을 잃었다. 갑자기 살이 찌면서 대상포진이 오기 시작했다. 아마 멕시코에서부터였을거다. 멕시코 가기 전에 건강검진때 폐에 음영 증가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그 오랜시간 나름 괜찮았던 건 운동을 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유전자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지 모르겠지만,...

폐암 4기 암환자

9월 17일 다학제 진료가 있었다. 전날 MRI 찍으면서 떼온 진단서에서 이것저것 본 것들로 유추해서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조직검사결과 PD-L1 0%, ALK 음성, MET IHC 3+ 나에게 그렇게 좋은 결과가 아니란 걸 알았다. 표적 항암하거나 면역 항암에 쓸 수 있는 게 없다. 아직 유전자 검사가 다 나온 건 아니라서 그 이후 어떻게 될지... 다학제 진료 둘째 여동생을 데리고 갔고, 남편은 음성 통화로 내용을 들었다.  1. 종양의 크기가 너무 크다. 우측 폐 상중하에 걸쳐 길게 분포하고 있고 기관지 근처라 수술은 배제하는 걸로 결론을 냈다. 혹시 나중에 사이즈가 줄어서 수술할 수 있을지의 여부에서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2. 뇌MRI에서 너무 작아서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미세 병변 하나가 보였다. 이게 전이된 것인지 파악할 수가 없지만 의료진은 크게 전이성에 염두를 두고 치료계획을 세우겠다고 했다.  3. 다행히 림프절 전이는 없다. 최종 T4N0M1, 나는 폐암 4기 환자가 되었다. 7월 검사에서부터 병원에 갈 때마다 안 좋은 소리를 하나씩 하나씩 얹어 결국 이렇게 되었다. 다음 진료에서 변이 유전자가 있는지 봐야 하는데, 또 무서운 소리를 듣게 될까봐 겁이 난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는데 나는 덤덤히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여러 메이저병원에 연락했고, 서울 아산 병원과 삼성 병원을 잡았다. 사실 수술 여부를 알고 싶었지만 삼성병원에서는 이미 사람이 너무 많아서 수술 관련 예약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항암 방법이 비슷하다면 나는 빠르고 쉽게 오갈 수 있는 아주대병원에 다닐 것 같기는 하다.  오후에 있을 운동성 검사는 어차피 수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취소했다. 동생과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간다. 딸이 아빠랑 오빠랑 동생이랑 삼겹살을 먹고 있다고 영상통화를 했다. 언젠가 다시 모여 삼겹살을 구워먹을 수 있은 날을 상상해본다. 다시 예전처럼 웃으며 맛있는 밥을 함께 먹을 날들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폐선암입니다.

촉이란 게 있다. 병원에 가기위해 전철타는 순간부터,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을 때, 간호사가 한 마디 건네는데의 뉘앙스.. 진료실에 들어가기까지 미치듯이 떨리더니 의사를 만났고  "음.. 암이 나왔어요" 라는 한 마디에서 툭 던져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선암이에요. 비교적 느린 암이에요. 사이즈가 작지 않아 3기 예상해요. 폐암은 뇌로 전이가 잘 되니까 일단 MRI를 찍어야 해요. 그리고 운동 검사 등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봅시다 유전자 검사 해서 표적항암제 쓸 수 있으면 제일 좋구요. 방사선과 항암을 병행하는 방법도 있어요. 알다시피 수술할 수 있으면 전절제해야 하구요."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암 모양은 아닌 것 같지만 검사해봅시다"를 시작으로 검사에 검사를 거듭한 다음 결국에는 '폐선암 3기'에 걸렸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 하나도 안 아픈데...  산정특례 문자가 오고, 병원비를 정산하고 나오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미국은 새벽 2시쯤이었을거다. 마침 집에 가려고 서둘러 셔틀버스 타러 가는 길이었는데,  남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잠깐의 침묵에 남편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울지마~" "이따가 전화해도 돼?" 다행히 전철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더 담담해지려고 했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실감이 안 나지만 어쨌든 난 암 환자가 되었다. ChatGPT와 재미나이를 돌려서 앞으로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등을 검색한다.  3기이지만 전이가 없고, 유전자를 찾으면 일상과 연결해서 생활할 수 있고, 관해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단다. 폐선암을 그래도 할 수 있는게 많다. 밤새 폐암환우 네이버 카페에 들어가 선암과 관련된 많은 글들을 읽었고, 처음에는 감도 오지 않던 약 이름들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나는 내가 꼭 나을 것 같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암환자처럼 보이지 않게 잘 치료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년...

결과 들으러 가는 중

 9월 14일 13:30  미치도록 떨린다. 점점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진료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떨리고 있다. 정말 나 걱정덜어주고 싶어했던 그 간호사님의 말이 긍정신호였기를 바라며.. 제발 기족과 친구들에게 웃으면서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이 마음은 어떻게 진정시키나..

여보, 미안해

 9월 11일 금요일이었다. 조직검사할 때 생긴 기흉때문에 3일을 내내 누워 지냈다.  031-219-47** 갑자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느낌이 수원인 것 같아서 전화를 얼른 받는다. "아주대 병원이에요. 생각보다 검사 결과가 빨리 나올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 주 중에 오셔도 되는데 언제 괜찮으세요?" "저는 다음주에 다 괜찮아요." "그러면 월요일 오후에 오세요. 너무 걱정하시는 것 같아서 결과 빨리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요." 보통 '걱정하시는 것 같아서'라고 말하는데 나쁜 결과를 알려주려고 전화하지는 않지 않을까? 간호사님 목소리가 걱정스러운 투가 아니었다고 기억을 더듬으며 약간의 희망을 가져본다. 9월 12일 토요일  오늘은 기흉 걱정을 뒤로 하고 나들이에 나서본다. 사실 좀 겁이 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아프지 않았으니.. 이상하게도 나는 바로 아랫 동생이 함께 있으면 마음이 안정된다. 다른 걱정을 조금 잊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일부러 하루 같이 보내고 싶다고 찾아와 준 동생이 고맙기도 하고, 일주일을 집에만 있었더니 바람을 쐬고 싶기도 했다.  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요새 통 바빠서 연락이 뜸했었다. 목소리에 힘이 없다. "괜찮겠지?"라고 묻는데 "그랬으면 좋겠다" 라고 답할 수 밖에.. 남편은 요새 회사 제품에 불량이 많았어서 오스틴도 다녀와야 했다. 남편이 품질관리부서의 팀장이다 보니 책임이 막중할텐데 오늘은 그 무게가 더 무거워보였다. 일에 집중해야 했는데 나때문에 애들 돌보느라 제 할 일을 못하게 한 것 같아 슬프다. 잠 잘 시간을 줄여서 딸 픽업다니고 아이들 저녁도 챙겨줘야 하니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까? 눈물이 났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언젠가 이즈음의 일을 웃으면서 해프닝처럼 얘기할 수 있기를, 지금 이 힘든 시기가 곧 지나갈 것이라고 믿으며 더 이상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

아주대 병원 입원 - 조직 검사

 9월 5일 토요일 아주대병원에 입원했다. 9월 7일 기관지 내시경으로, 9월 8일 CT 생검으로 조직검사를 하기로 했다. 굳이 토요일에 입원하는 이유는 9월 7일에 입원을 장담할 수 없고 보통 기관지 내시경은 오전에 하기 때문에 미리 병원 배드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나보다 더 위급한 환자들이 있을테니 원래 그러면 안되는데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나의 특수한 상황을 배려해준거다.  주말동안은 내가 특별히 할 수 있는 일, 병원에서도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그저 침대에 누워 쉬고, 가끔 지하에 내려가서 바람 쐬는 게 다였다. 옆 베드에 계신 환자분들은 매우 아파 보이는데 나만 너무 편한 거 같긴 했다. 월요일 아침 기관지 내시경을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간호사님이 갑자기 보호자가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이전에 기관지 내시경 할 때는 괜찮았는데 보호자가 필요할까요? 물었더니 혹시 모를 비상상황을 대비해서 그렇단다. 급하게 동생한테 연락했고, 다행히 동생이 아침 일찍 병원에 와 주었다.  전날 저녁을 먹고 12시부터 물포함 금식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기관지내시경을 하게 되었다. 베드를 타고 움직이는데 솔직히 너무 챙피했다.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중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검사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담당교수님이 지나가다 나를 보셨다. 교수님은 마침 오전에 진료가 없으셨는데, 검사실에 계신 의사쌤께 양해를 구하는 것 같았다. 나의 경우 굉장히 안쪽에 병변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조직을 채취하기 어려울 거라고 진작 알았기에 아무래도 병변의 위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 교수님이 직접 하실 모양이다. 기관지 내시경은 국소마취만 하고 진행하기 때문에 결코 쉬은 과정은 아니다. 지난 번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기에 약간 긴장이 되었다.  국소마취후 교수님이 기관지를 통해 관을 삽입했고, 몇 장의 사진을 찍은 후 조직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우측 폐 상중하에 걸쳐 중심부에 자리잡은 내 병변에서 조직을 떼어내기 위해 교수님은 여러차례 시도...

검사 결과가 상당히 안 좋아요.

 혼자 한국행비행기에 올랐다. "애들 걱정하지 말고, 잘 검사받고 와"    도착하고 다음날인 8월 26일 PET-CT와 CT를 찍었다. 그리고 또 기다림의 시간이다. 의사를 만나기까지 일주일의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계속 별일이 없기를 기도했다.  와중에 친구와의 통화중에 폐에 문제가 혹시 코로나 후유증이지 않을까? 이야기하다가 과거 검강검진 기록을 찾아보았다. 2023년에 폐에 질환이 있으니 CT를 찍어보라는 권고가 있었다. 혹시? 하고 21년, 19년 기록까지 있길래 찾아보니 어라? 그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써 있다. 적잖이 놀랐다.  나는 그동안 왜 CT를 찍어 볼 생각을 안했지? 그런데 왜 아프지도 않았지?  일부러 하루 시간을 내어 평택에 가서 건강검진 했던 병원들을 찾아가 과거 찍었던 폐엑스레이 사진들을 찾아왔다.  9월 2일 의사를 만나는 날,  나는 과거 폐엑스레이 사진들을 아주대병원에 등록했고, 드디어 의사를 만났다. "어떻게 일찍 오셨네요. 그런데 검사결과가 상당히 안 좋아요" "네? 어떻게 안 좋아요?" "일단 CT가 한달 전이랑 변화가 없어요. 그러면 염증은 아니라는 거에요. PET-CT에서 폐에 이렇게 검게 보여요. 아마 80% 악성일 가능성이 있어요. 문제는 만약 진짜로 악성이면 폐 전체를 절제해야 해요. 병변이 오른쪽 폐 상중하엽 중심에 걸쳐 아래로 길게 있어서요." "아..." "이게 너무 이상해서 아침에 다른 쌤들께도 여쭤봤어요. 이 정도 크기면 전조증상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했고.. 3~4년전에도 이런 게 없었다 했으니.. 많은 상의를 해 봤지만 다른 쌤들도 결론은 악성일 가능성을 말씀하셨어요." "아, 선생님, 제가 친구랑 얘기하다가 과거 건강검진 기록을 찾아봤어요. 7년전에도 우측에 결절 비슷한 기록이 있었더라구요. 영상 올렸는데 한번 살펴봐주시겠어요?" 선생님은 한참 살펴보셨다. "아, 너무...

언니, 언제 올 수 있어?

 8월 13일  "여보세요? 언니" "응" "나 병원에 와서 의사 만났는데, 피검사 한 것도 괜찮고, 뭐 보이는 건 없는 거 같은데... CT 찍을 때 조영제의 모양이 변한대.  그래서 조직검사를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언니가 가지고 있는 폐의 병변이 너무 안쪽이라서 좀 어려운 것 같다고 하네.. 일단 PET-CT를 먼저 찍어보자고 하는데, 언제 나올 수 있어?"  새벽 2시,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이상하게도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서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오늘도 밤 새겠구나..  추수감사절 방학이 있는 11월23일에 PET-CT 예약을 잡았다. 비행기표도 예약했다.  만약 내가 어떤 질병이 있더라도, 혹여 수술을 하더라도 3주만 버티면 아이들은 또 겨울방학을 할 터이니 아이들때문에 부담은 덜지 않을까? 그리고 의사도 그정도 시간이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하긴 했다.  나는 의연하고 싶었다. 큰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마침 그날 딸의 친구 엄마인 메이를 만나기로 했었다. 그녀는 의사쌤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딸들을 데리고 10월 스페인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메이는 혹시 진단서들을 뗄 수 있으면 보여주라고 했다.  찾아보니 아주대병원에서는 온라인으로 병원 진료 기록과 검사기록지들을 신청할 수 있었다. 다만 CT 영상 등은 직접 받아야 했다. 나는 받은 기록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던 추정진단명이 있었다.  More likely malignant tumor in Rt, lung, R/O mucinous invasive adenocarcioma. R/O MALToma. 오른쪽 폐에 악성 종양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점액성 침윤성 선암을 배제할 수 없다(의심된다) 말트 림프종(MALToma)을 배제할 수 없다(의심된다) 기록을 확인한 메이는 "언니 저라면 얼른...

일단 일반적인 암 모양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어.. 일단 일반적인 암 모양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예전에 폐렴에 걸렸거나 아팠던 적이 있나요? " "아니요. " "그러면 검사같은 것도 해 본적은요?" "3~4년 전에 건강검진 했었는데, 아무것도 안 나온 거 같은데..." 이런 상황에 많이 놀라서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혹시 최근에 살이 많이 빠지거나, 숨이 차거나 각혈을 하거나 한 적은요?" "없었어요~" "일반적인 암 모양은 아닌데 지금 병변의 크기가 작지 않아요. 검사를 좀 더 해 보죠." "선생님, 저 다음주에 미국에 돌아가야 하는데요. 나중에 겨울에 다시 와서 검사해도 될까요?" "음~ 나이가 많으시면 모르겠는데, 지금 너무 젊으시잖아요. 그때 이 병변이 더 커질지 작아질지는 아무도 몰라요."  "네.. 그렇긴 하죠" "저희 병원에서 CT를 다시 한번 찍으시죠. 굉장히 정밀하게 찍는 CT가 있어요. 그리고 기관지 내시경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영상의학과 CT를 다음날로 예약하고, 기관지 내시경도 다음주 월요일 아침으로 예약했다.  미국으로 출국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것을 크게 어필했다.  문제는 이 모든 검사를 하고 그 결과는 또 그 다음주에 나온다는 것 심지어 기관지 내시경에서 채취한 세포검사 결과 날짜를 장담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7월 30일 CT, 8월 3일 기관지 내시경, 8월 4일 출국  8월 10일 검사 결과 확인 - 그런데 배양이 늦어질 경우 8월 13~14일에 확인할 수도 있음.. 갖가지 검사를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만가지 생각이 스친다.  아이들끼리 미국행 비행기를 태워보내려고 했는데 유나이티드 항공 규정상 만 18세 이상의 동승자가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큰 아이는 생일이 늦어 아직 만 17세다.  그러면 아이들과 나의 티켓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