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일지 3일차

26.9.20


아직 항암은 시작도 안했는데...

남편이 퇴사할 것 같다. 한마디로 그냥 짤리는거다.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괜찮았다. 애들이 보고 싶었고 언제까지 따로 살 것인가?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조금 돈도 있을거다. 남편이 이직 준비 잘해서 잘 들어오면 되고, 뭐든 굶어죽겠냐? 내가 문제지..

나는 괜찮아질거다. 오늘도 내 암세포는 줄어 들고 있고 새로운 세포로 재생된다. 어차피 나는 살아날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 우리 가정에 닥친 상황을 잘 헤쳐나갈거다. 

남들은 다 남편이 회사를 정리하고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단다. 생활이 걸린 일이니 말은 못했을 뿐.. 아버님도 제부들도 말이다. 우리만 못 보고 있었던거다. 

동생도 잘 된 일이라고 말했고, 시누이는 이 상황이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도리어 좋아했다. 뭔가 시기적으로 잘 맞아 떨어지니 다행인 것 같다고 했다. 긴 항암을 시작하니 남편이 오는 게 맞다는 의견이다. 나의 미국 생활은 이제 막을 내리겠지만 나는 한국에서, 여기 안산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될거다. 아이들과 남편과 옹기종기 모여 밥 먹을 일상을 그려본다. 우린 잘 헤쳐나갈거다. 

윤정이와 은경이에게 상황을 얘기했다. 함께 울어줘서 고맙다. 3일간 온갖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데 이제 굳건해지기로 했다. 긍정적으로 상황을 헤쳐나가자. 난 잘 해낼 수 있다.

06:50~7:30 운동 / 미영과 전화통화..

몽땅주스 2번 먹음 - 암세포야 사라져라.. 정상세포로 재생 됐음..

17:00 저녁 -채식 위주로 골고루 먹었다 / 암세포 0.1% 사라졌다.

18:30 산책 


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은데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남편의 소식을 들었더라면 더 막막하고 엄청 걱정하며 정리하지 못해 힘들었을거다. 마치 멕시코에서처럼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내가 남아있어야 하는 상황이고 아이들을 곧 만날 수 있으니, 집만 해결되면 (그것도 결국에는 어떻게하든 해결이 되겠지만) 한편 생각하면 썩 나쁜 것만도 아닐거다. 누나 말대로, 동생들 말대로 오히려 미국에 있는 가족이 들어오는 게 당연한 결과였을거다.

다만 어제 남편이 누나랑 통화하며 많이 울었다는 말에 속이 상했고, 혜윤이가 미국에서 잘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또 미안하다. 율은 고등 졸업장을 눈 앞에 두고 나와야 할지도 모르니 미안하고, 앞으로 철이 좀 들지 모르겠다. 해준이는 왠지 좋아할 것 같다. 참 파란만장 판타스틱한 내 인생이다. 나는 지금의 일들이 그저 지나가는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분명 10년 뒤에는 우리 모두 안정된 삶을 살 것이다. 선화 언니의 말처럼 혜윤이가 아이 낳으면 그것도 봐 줘야하고..   

일단은 내 병에 집중하자. 우린 잘 살아낼거고, 나중에 이 힘든 시간을 잘 버텨낼거다. 걷고 뛰자.. 항우울제란다. 내 암세포도 무찔러 줄거고~~~ 오늘도 내 암세포는 0.1%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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