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4기 암환자
9월 17일 다학제 진료가 있었다.
전날 MRI 찍으면서 떼온 진단서에서 이것저것 본 것들로 유추해서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조직검사결과 PD-L1 0%, ALK 음성, MET IHC 3+ 나에게 그렇게 좋은 결과가 아니란 걸 알았다. 표적 항암하거나 면역 항암에 쓸 수 있는 게 없다. 아직 유전자 검사가 다 나온 건 아니라서 그 이후 어떻게 될지...
다학제 진료
둘째 여동생을 데리고 갔고, 남편은 음성 통화로 내용을 들었다.
1. 종양의 크기가 너무 크다. 우측 폐 상중하에 걸쳐 길게 분포하고 있고 기관지 근처라 수술은 배제하는 걸로 결론을 냈다. 혹시 나중에 사이즈가 줄어서 수술할 수 있을지의 여부에서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2. 뇌MRI에서 너무 작아서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미세 병변 하나가 보였다. 이게 전이된 것인지 파악할 수가 없지만 의료진은 크게 전이성에 염두를 두고 치료계획을 세우겠다고 했다.
3. 다행이 림프절 전이는 없다.
최종 T4N0M1, 나는 폐암 4기 환자가 되었다.
7월 검사에서부터 병원에 갈 때마다 안 좋은 소리를 하나씩 하나씩 얹어 결국 이렇게 되었다. 다음 진료에서 변이 유전자가 있는지 봐야 하는데, 또 무서운 소리를 듣게 될까봐 겁이 난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는데 나는 덤덤히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여러 메이저병원에 연락했고, 서울 아산 병원과 삼성 병원을 잡았다. 사실 수술 여부를 알고 싶었지만 삼성병원에서는 이미 사람이 너무 많아서 수술 관련 예약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항암 방법이 비슷하다면 나는 빠르고 쉽게 오갈 수 있는 아주대병원에 다닐 것 같기는 하다.
오후에 있을 운동성 검사는 어차피 수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취소했다. 동생과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간다. 딸이 아빠랑 오빠랑 동생이랑 삼겹살을 먹고 있다고 영상통화를 했다. 언젠가 다시 모여 삼겹살을 구워먹을 수 있은 날을 상상해본다. 다시 예전처럼 웃으며 맛있는 밥을 함께 먹을 날들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동생도 아침부터 오느라 고생했고 뭐라도 먹이려고 근처 돈가스 집에 갔는데, 엄마랑 나랑 동생이랑 셋 다 입맛이 별로 없었다. 돈가스 반 이상을 남겨 싸오고 동생을 보내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너무 훤한 대낮이었다.
남편과 문자를 주고 받았다. 나보다 더 절망한 남편에게 나는 3기나 4기나 어차피 치료방향은 같았을거고, 나 처음부터 폐 한 쪽을 다 잘라내는 수술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암은 완전 정복은 없다고 했다. 더 자라지 않게 전이되지 않게 관리 잘하면서 운좋게 표적항암이나 임상이 될 수 있도록 치료해보자고 뜻을 정했다. 나는 이걸로 무너지지 않을거다.
너무 답답해서 운동한다고 밖으로 나갔다. 사실은 울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도 없는데서 엉엉 울고 싶었다. 다행히 오후 3시쯤이어서 사람이 없었다. 나는 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무너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할 것 같았다. 다 쏟아내고 풀어내지 않고 강한 척만 할 수는 없었다.
6시에 한번 더 운동을 나갔고, 저녁을 일부러 챙겨먹고 딸과 막내와 40분 통화한 뒤 잘 준비를 한다.
이미 나에게 남들보다 큰 병이 생겼다. 기수에 연연하지 않고, 나는 덤덤히 이 상황을 헤쳐나갈거다. 미국으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3년이든 5년이든, 20년이든 암과 함께 살아야 한다해도 나는 결코 내 삶을 포기하지 않을거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을거다. 5%의 완치자.. 그게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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