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일지 33일차

 5:00 기상 어제밤에 먹은 마약성 진통제 덕분일까? 잠을 푹 잤다. 아침에 일어나 몸무게랑 키 재고,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폐에 물이 조금씩 차 오르는 것 같았다. 한쪽 폐를 잃었지만 몇 십년의 인생을 얻었으니 괜찮다. 관리만 잘 하면 된다. 병원 내 교회에 갔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 수술까지 하게 된 이 모든 상황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잘 받겠다고 약속드렸다. 수술날 기도실에서 울면서 기도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얼마나 절박했던가. 잠시 안정을 찾았다고 기도하지 않는 나를 반성했다. 기도하며 또 눈물이 났다. 하나님이 "걱정하지 말아라, 너는 괜찮아질거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06:39)












오늘 회진에 주치의쌤이 웃으면서 들어와서 내일 퇴원에 대해 얘기했다. 배액관도 직접 떼 주고.. 뭔가 조금 안심이 되었다. 가장 위험한 건 기관지에 붙여 놓은 게 터지는 건데, 그럴 경우 검붉은 액체들이 막 올라올테니 지체하지 말고 응급실로 바로 오라고 했다. 다른 경우는 거의 수술로 인한 것들일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잘 쉬고 잘 회복하며 운동도 열심히 해서 항암 받기 좋은 몸을 만들거다. (그런 몸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건강하게..) 끝까지 잘 치료할거다. 지금부터 너무 많은 걱정은 안 할거다. 

12:00 동생과 남편이 사온 떡볶이를 먹었다. 그리고 이제 좀 푹 쉴거다. 한쪽 폐만 있으니 아무래도 예전처럼 활발히 움직이지 못하겠다. 그래도 운동할 수 있을만큼 회복이 잘 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완전히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컨디션 잘 회복할거다.  (13:06)

아산병원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희한하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첫날 와서는 아무 생각없이 잠을 잘 잤지만 수술 당일에는 혜윤이의 편지에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보고 싶은 마음에 울기 시작했고, 집도의쌤이 와서 마음을 헤집어 놓아 불안하고 무서워서 또 엄청 울었다. 교회에 가서 울고, 병실에 와서 울고, 수술실 가면서 또 울고...  추석날 혼자 산에 올라갔다가 하나님께 살고 싶다고 엄청 울었다면 이번에는 남편과 같이 많이 운 날이다. 이 두 날을 생각하면 그냥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러면서 이렇게 암덩어리를 모두 제거한 지금이 기적과 같다. 중환자실에서 눈 뜨면서 "하나님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끝까지 치료를 다 받아내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꼭 끝까지 치료받고 살아내서 아이들 곁으로, 휴스턴 서울 교회에 가겠다는 결의와 모든 것이 다 잘될거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마음속에 품고 살겠다. 오늘 새벽 기도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확신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해를 통해 마음을 보여주셨고, 기도에 음성으로 다 괜찮아질거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다 괜찮아진다. 정말로 다 괜찮아진다.

나는 20년 더 살았고, 하나님의 보혈이 나를 깨끗하게 하셨다. 암세포는 날마다 줄어들었고, 새로운 세포로 재생됐다. 수술은 잘 됐고, 항암주사를 거뜬히 맞았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주는 아이들과 가족들, 휴스턴에서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는 지인들에게도 감사한다. 큰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해 주셨고 타인을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나는 앞으로도 이런 마음들을 잊지 않고 큰 사람으로 거듭날거다. (20:02)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 잠이 오지 않는다. 오른쪽 옆구리에 흉강경 수술 자국이 있는데 가끔 밤에 자기 전에 좀 아프다. 어제 잠을 잘 잤기에 진통제가 잘 듣는구나 싶었는데 오늘은 쿡쿡 쑤시는 통증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마침 우리 침대가 한강뷰라서 한참을 멍때리며 쳐다본다. 언제 또 이런 호사를 누리겠나 싶다. 아산병원에서 수술이 잘 되고, 회복도 잘 된 편이라 좋은 기억을 계속 누리고 싶은가보다. 한편 뭐든 잘 먹고, 잘 자는 남편이 부럽고, 계속 이렇게 건강하게 내 옆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이번에 병원에서 남편도 나랑 같이 많이 울었다. 혼자 수술이 잘 끝나기만을 바라며 병원에서 대기했을 남편이 안쓰러웠는데 뭐 했는지 말을 안 해 준다. 수술 끝나고 경과를 알려주며 마지막으로 "잘 버텨줘서 고마워 사랑해"라는 문자를 찾아보고는 또 울컥.. 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딸이 말해 준 것처럼 나는 강한 사람이니까.. 우리 가족들을 꼭 지켜줄거다. 걱정을 사서 하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성경이나 책을 읽고 웃긴 유튜브를 보자. 나는 괜찮고 앞으로 더 괜찮아질거다. 나는 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22:22)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One Step, One Story - 천천히, 미국에서

종교를 갖는다는 것

미국에서 줌 논술 수업 - 글을 쓴다는 것